유도 9단 한호산, 프로필 공개!
2026. 8. 21.

한 줄 소개
35년간 독일 유도의 발전을 이끈 9단으로, 한국 무술을 국제 무대에 알린 '무도 외교관'입니다.
아흔에 가까운 나이까지 '유도인으로 산' 이유
지난 8월 14일, 88세의 한호산 9단이 독일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국 태생이지만 독일 유도를 35년간 이끌었던 인물이라는 부고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생소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한국 무술의 위상을 높인 '조용한 외교관'의 죽음은, 우리가 놓치고 있던 중요한 이야기 하나를 남겨주었습니다.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호산은, 처음부터 '국제적 무도인'이 되려고 꿈꾼 사람은 아닙니다. 양정고등학교에 다니며 유도를 배웠고, 홍익대학교 건축미술학과에 진학했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이 경력 속에서,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1961년, 당시 23세의 청년 한호산은 파리에서 열린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 한국 선수로 참가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5위라는 성적을 거두었는데, 이것이 단순한 경기 결과가 아니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서울에서 시작된 한 젊은이의 유도 기술이 파리의 무대 위에서 세계인에게 인정받은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독일로 건너간 한국 무술의 '씨앗'
당신의 자녀나 손주가 유학을 가게 되면, 보통 학위를 따기 위해 떠나갑니다. 하지만 한호산이 1962년 독일로 건너간 것은 좀 달랐습니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유도를 가르치기'였습니다.
1960년대 당시, 독일에서 유도는 동양의 신비한 무술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태권도나 유도가 당연한 스포츠라고 생각하듯이, 당시 서방 유럽인들은 '동양의 수수께끼 같은 격투기' 정도로만 이해했던 거죠. 한호산은 그곳에서 체계적으로 독일 선수들을 훈련하고, 독일 유도연맹과의 협력을 늘려나갔습니다.
국제 스포츠 교류는 외형적으로는 경기 결과로 평가되지만, 실제로는 문화 대사의 역할을 합니다. 한호산이 독일의 선수들을 지도할 때마다, 그들이 배우고 느낀 것은 단순한 '기술'만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정신문화, 무도의 철학, 겸손과 단련의 가치—이 모든 것이 함께 전해졌던 것입니다.

35년의 헌신, 그 무게
만약 당신이 어떤 일을 35년을 한다면, 그것은 무엇이 될까요? 회사 생활을 35년 하거나, 한 마을에서 35년 살아가거나, 같은 취미를 35년 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한호산이 독일 유도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35년을 헌신했다는 것은, 그저 '오래 일했다'는 의미를 훨씬 넘어섭니다.
그 기간 독일 유도는 단순한 마이너 스포츠에서 국제 무대의 주요 선수국으로 성장했습니다. 독일의 유도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세계선수권에서 상위권에 오르게 된 것에는 그의 세밀한 지도와 헌신이 큰 역할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당신이 50대나 60대, 70대에 다른 나라에서 그 정도의 책임감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때론 선수들이 당신의 지도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35년을 그렇게 해냈습니다.
무도인의 길, 무도 외교관의 길

한호산의 삶은 '스포츠 감독'이라는 직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는 동시에 '한국 문화 대사'였습니다.
유도는 겉으로는 격투 기술의 경쟁이지만, 깊이 들어가면 '상대를 존중하면서 최선을 다한다'는 동양 무도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한호산이 독일 선수들에게 가르친 것은 이 철학이었을 겁니다. 한국의 무술이 단순한 '이기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독일인들이 이해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1961년의 파리 선수권에서 보여준 한국 유도의 기술이, 1962년부터 독일에서 35년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수출'이 아니라, 무도 정신의 국제적 확산이었습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던 '조용한 성공 이야기'
한국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한국인'이라고 하면, 보통 유명한 배우나 가수, 혹은 큰 사건으로 보도된 인물들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한호산 같은 인물들은, 언론의 조명 없이 각자의 분야에서 묵묵히 해낸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당신의 부모님 세대가 해외로 이민을 가거나 유학을 갔을 때, 그곳에서 한국 사람으로서 자신의 일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존경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언어가 서툴고, 차별을 받을 수도 있고, 고향에 두고 온 사람들이 그리웠을 텐데도 말입니다. 한호산이 독일에서 35년을 버티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한국 유도인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을 겁니다.
무도의 가치가 잊혀가는 시대에
요즘 우리는 스포츠를 '결과'로 평가하는 데 익숙합니다. 금메달 몇 개, 순위가 몇 위인가—이것이 중요한 지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호산의 35년이 남긴 유산은, 숫자로는 측정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독일 유도가 오늘날 유럽의 주요 유도국이 되기까지, 한국 무도의 정신이 얼마나 스며들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 명의 한국인이 다른 문화권의 젊은이들에게 '무도란 무엇인가'를 35년간 알려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기술 전수'가 아니라, '정신의 전달'이었다는 점입니다.
'한국 무술 외교'가 앞으로도 필요한 이유
한호산이 1960년대에 해낸 일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AI 시대, 글로벌 시대라고 불리는 지금, 한국 문화를 국제 무대에 알리는 '문화 외교가'의 역할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태권도, 유도, K-팝, 한식—이 모든 것들이 세계에 퍼져나가는 것은 정부의 외교 정책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각 분야에서 한호산처럼 현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많은 '한호산들'이 조용히 그들의 일을 해내고 있을 겁니다.
한호산은 88세에 독일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토록 오래 헌신한 독일 유도계를 바라보며 떠났을 것입니다.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국제적 헌신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