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수 쓰카모토 이사오, 프로필 공개!
2026. 8. 23.

한 줄 소개
한국어 대사전 편찬에 평생을 바친 일본 오사카 외대 교수로, 한일 문화 교류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 언어학자.
92세의 나이로 떠나간 '한국어 사랑꾼'
지난 8월 20일, 일본 오사카에서 한 명의 언어학자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쓰카모토 이사오(塚本 伊佐夫) 교수, 당시 나이 92세였습니다.
부고를 듣는 순간, 많은 한국 학자와 언어 연구자들이 한숨을 쉬었습니다. 마치 우리 부모님 세대가 오래된 친구를 잃은 듯한 그런 슬픔이었어요. 왜냐하면 쓰카모토 교수는 단순한 '외국인 한국어 학자'가 아니라, 한국어 연구에 있어서 정말 소중한 '다리' 역할을 해온 분이기 때문입니다.
생전에 쓰카모토 교수는 뇌출혈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도 한국어 사전 편찬 작업을 계속 진행했고, 결국 흡인성 폐렴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말 그대로 한국어 연구라는 손을 놓지 않은 채, 마지막까지 학자로서의 삶을 살다 간 분이었어요.

"일본어 기원은? 그럼 한국어는?" 우연의 시작
이사오 교수의 한국어 인생은 실은 '우연의 연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교토대학에서 언어학을 공부하던 시절, 그는 일본어의 기원을 추적하는 데 열중했다고 합니다. 아마 지금의 대학생처럼, "일본어는 어디서 왔을까?"라는 순수한 호기심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일본어의 기원을 찾다 보니, 한국어를 이해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계속 나타났던 것입니다.
"한국어를 알아야겠다." 이렇게 결심한 그는 정식 교육 기회가 많지 않던 시절,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 강좌도 없고, 교과서도 제한적이던 1950년대~1960년대 초반의 일입니다.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우리가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얼마나 힘든지 생각해보면, 그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독학으로 한국어 기초를 닦은 그는, 1963년 오사카 외국어대학(현재의 오사카대학교)에 개설된 조선어학과(한국어학과)에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상징적인 시점이었어요. 일본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학문'으로 가르치는 시대가 막 시작되던 때였거든요.
『조선어 대사전』, 30년의 혼을 담다

쓰카모토 교수를 진정으로 유명하게 만든 업적은 『조선어 대사전』이라는 대규모 사전 편찬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사전이 얼마나 대단한 작업이었는지 이해하려면, "사전을 만든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단순히 단어를 모아서 뜻을 쓰는 것이 아니거든요. 진정한 사전은 그 언어의 역사를 담아야 하고, 각 단어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지를 모두 기록해야 합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국어사전을 찾을 때를 떠올려보세요. "이 단어는 어디서 온 거지?", "예전에는 이렇게 썼다는데?" 같은 궁금증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 모든 질문에 답하는 것이 대사전의 일입니다. 마치 한 언어의 '족보'를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쓰카모토 교수는 이 『조선어 대사전』을 약 30년에 걸쳐 편찬했다고 합니다. 30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지 생각해보세요. 교수 생활 대부분을 이 한 가지 프로젝트에 쏟아붓다시피 했던 것입니다.
한국 고전 문학, 영어가 아닌 일본어로 먼저 만난다
의외로 쓰카모토 교수의 업적 중에는 번역 작업도 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이청준의 단편소설 『저 하늘에도 슬픔이 있다』를 일본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한국의 좋은 문학작품이 세계에 알려지려면, 먼저 누군가 그것을 다른 언어로 옮겨야 합니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여러 언어로의 번역이 있겠지만,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일본에서 일본어 번역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할까요?
쓰카모토 교수 같은 분이 있었기에, 일본의 독자들이 한국 문학의 참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한국 문화를 일본에 소개하는 '문화 대사' 역할이었어요.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쓰카모토 교수의 삶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진정성'입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시대는 '빠름'을 중시합니다. 빨리 배우고, 빨리 성과를 내고, 빨리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능력 있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쓰카모토 교수는 다른 길을 걸었어요. 한 가지 일에 30년을 쏟아붓고, 정년을 훨씬 넘겨서도 계속 그 일을 했습니다.
"왜 이렇게 오래 한 가지만 했을까?" 라고 물으면, 아마 이렇게 답했을 것 같습니다. "이 일이 정말 필요하고,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우리 부모님이나 할머니 세대를 보면, 한 가지 일을 평생 해온 분들이 많습니다. 직업도 그렇고, 취미도 그렇고. 그 세대는 어떤 것을 시작하면 깊게 파고드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어요. 쓰카모토 교수도 그런 정신을 가진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일 문화 교류, '말'로 시작된다
지금 한일 관계를 보면 정치·경제·외교로만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쓰카모토 교수 같은 분들은 다른 차원에서 양국의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바로 '말'과 '글'이라는 문화의 가장 깊은 층에서.
한국어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일본 학자가 있다는 것, 한국의 고전 문학을 일본말로 제대로 옮길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 이런 것들이 결국 진정한 문화 교류를 만듭니다. 정부의 공식 행사나 무역 협상만이 아니라, 이런 조용하고 깊은 학문적 교류가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이웃이다"라고 느낄 수 있는 거거든요.
세상은 떠났지만, 사전은 남았다
쓰카모토 이사오 교수는 92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조선어 대사전』은 여전히 한국과 일본의 언어 연구자들이 참고하는 중요한 자료로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마치 우리 할아버지가 만든 집이 손자 세대에서도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처럼, 쓰카모토 교수의 사전도 그렇게 계속 살아서 일하고 있는 것이에요.
요즘 같은 시대에 한 가지 일을 30년 이상 한다는 것, 물질적 보상이나 화려한 명성 없이도 언어 연구에 전념한다는 것 — 이런 일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는 잘 모르고 지나갑니다. 하지만 세상이 빨리 돌아가고 모두가 다른 것을 향해 달려갈 때, 누군가 묵묵히 한 분야를 깊게 파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문명과 문화를 지탱하는 초석이 되는 것입니다.
쓰카모토 이사오 교수의 삶과 업적을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한 학자를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과 '깊이'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